분류 전체보기28 제주 조릿대 바구니, 바람 속에 엮인 섬의 기술 제주 바닷바람이 반짝이는 해안을 스치고, 한라산 자락의 숲길을 파고들며 시원한 숨결을 전합니다. 그 안에 숨은 조릿대는 한라산 고지부터 섬 아래 들판까지 제주 전역을 은은한 녹음으로 채우는 식물입니다. 벼과에 속하는 이 작은 대나무는 마디가 뚜렷하고 질기며, 바구니나 줌 바구니처럼 생활용품의 주요 원료로 쓰여 왔습니다 . 조릿대는 제주의 바람과 햇빛을 품은, 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식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릿대가 ‘애물단지’라는 말까지 듣습니다. 과도한 번식력이 한라산 생태계를 위협하고, 보호 논의의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이 사연 속에는, 섬사람들이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삶과 분리되지 않은 조릿대 바구니 장인을 잃어가는 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 저는 이 글을 통해 제주 조릿대 바구니라는 전통 공예.. 2025. 6. 10. 남해 멸치털이, 바다 위의 마지막 춤 남해의 바다는 언제나 바람에 실려 온 생명의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봄이면 수천, 수만 마리의 멸치 떼가 검푸른 바다를 은빛으로 수놓았고, 그 멸치를 잡기 위한 어부들의 고함과 물살을 가르는 그물의 소리가 마을을 깨웠습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희미한 여명 아래 조용히 준비된 배들은 멸치가 몰려든다는 신호가 오면 순식간에 항구를 벗어나 바다 위로 흩어졌습니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항 부근의 작은 어촌은 오래전부터 ‘멸치털이’로 유명했습니다. 일반적인 어로 방식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는 수확한 멸치를 바닷가 모래밭에서 직접 ‘털어’내는 고유한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이른바 ‘멸치털이’는 어선에서 끌어올린 그물을 육지 가까이 옮겨 놓고, 그물 속에 엉킨 멸치를 하나하나 손으로 풀어내는 노동집약적인 방식이었습니.. 2025. 6. 10. 예천 회룡포의 메밀묵집, 어머니의 손맛이 사라진다 경북 예천 회룡포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내성천이 S자 형태로 마을을 감싸 안듯이 흐르며 만든 이 비경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펼쳐내는 생태와 인문이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그곳에선 언제나 물소리가 조용히 흐르고, 논밭의 초록이 사계절을 바꾸며 마을의 삶을 지탱해 왔습니다. 회룡포의 마을 한켠, 사람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는 작고 오래된 메밀묵집이 있었습니다. 허름한 기와지붕 아래 단출한 나무 탁자 몇 개, 연탄불로 지지던 메밀묵을 담아내던 깊은 대야. 그 집의 메밀묵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이 마을의 추억이고 정서였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 맛을 두고 ‘시골의 맛’이라 말하고, 마을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 손맛’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 묵집의 문.. 2025. 6. 9. 강릉단오제 뒤편, 대나무 부채장수의 마지막 여름 강릉단오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민속 축제 중 하나로, 매년 초여름이 되면 강릉 도심은 신명나는 소리와 화려한 행렬로 들썩입니다. 단오굿, 관노가면극, 씨름과 그네타기 같은 민속놀이가 이어지고, 강릉의 거리마다 상인들과 관광객이 뒤섞여 축제의 정점을 이룹니다. 이 전통축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문화행사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의 무대 뒤편, 덜 조명받는 공간이 있습니다. 단오제의 부대 행사로 열리는 장터 한켠에 자리 잡은, 오래된 대나무 부채 장수의 좌판. 조용히 자신의 부채를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그에게는 더 이상 붐비는 인파도, 카메라의 관심도 닿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정성스레 부채를 깎고 다듬지만,.. 2025. 6. 9. 영덕의 민속장, 장이 서지 않는 날 경상북도 영덕. 대게와 해풍으로 유명한 이 바닷가 마을에는 오랜 세월 지역의 삶과 역사를 품어온 민속장이 있었습니다. 장날이 되면 골목골목에 좌판이 펼쳐지고, 아침 일찍 수확한 채소며 갓 지은 두부, 손으로 빚은 떡들이 속속 등장하던 곳. 그야말로 사람 냄새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영덕의 민속장은 단순한 거래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이웃이 안부를 묻고, 상인과 단골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이야기들이 엮이는 작은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마을 어귀에 ‘오늘은 장날’이라는 현수막이 걸리면, 평소에는 고요하던 거리도 활기를 띠고 사람들의 걸음이 분주해졌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오늘은 장날’이라는 문구가 무색해졌습니다. 장이 열려도 좌판은 드물고, 손님은 띄엄띄엄하며, 장터 한복판에는 정적만이 맴돕니.. 2025. 6. 9. 인제의 산촌 두부, 손맛이 끊긴 장터 강원도 인제. 깊은 산골짜기와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이곳은 예부터 농사가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지만, 주민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지혜를 쌓아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제 산촌 마을에서는 오랜 세월, 두부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온 독특한 식문화가 있었습니다. 두부는 이곳에서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을 장터의 중심이자 이웃 간 교류의 매개체였습니다. 인제의 산촌 두부는 시중의 공장형 두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손맛과 정성이 깃든 음식입니다. 두부 한 모를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콩을 불리고, 맷돌에 갈고, 국을 끓이며, 고슬고슬한 두부를 틀에 눌러냈습니다. 사람들은 장날 아침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사기 위해 장터로 향했습니다. 그런 장면은 인제뿐 아니라 전국 각지 산촌에서 볼 수 있.. 2025. 6. 8.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