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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 뒤편, 대나무 부채장수의 마지막 여름

by 조용한 성장 2025. 6. 9.

강릉단오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민속 축제 중 하나로, 매년 초여름이 되면 강릉 도심은 신명나는 소리와 화려한 행렬로 들썩입니다. 단오굿, 관노가면극, 씨름과 그네타기 같은 민속놀이가 이어지고, 강릉의 거리마다 상인들과 관광객이 뒤섞여 축제의 정점을 이룹니다. 이 전통축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문화행사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의 무대 뒤편, 덜 조명받는 공간이 있습니다. 단오제의 부대 행사로 열리는 장터 한켠에 자리 잡은, 오래된 대나무 부채 장수의 좌판. 조용히 자신의 부채를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그에게는 더 이상 붐비는 인파도, 카메라의 관심도 닿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정성스레 부채를 깎고 다듬지만, 그를 알아보는 이는 점점 줄어들고, 그의 여름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하나의 직업, 하나의 장인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기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채 장수의 이야기는 강릉단오제가 가진 양면성 - 전통과 소비, 지역과 관광, 기억과 망각 - 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여름은 단지 개인의 이별이 아닌, 사라져가는 기술과 삶의 방식에 대한 공동체적 반성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강릉단오제 뒤편, 대나무 부채장수의 마지막 여름

대나무 부채의 역사

대나무 부채는 여름철의 더위를 식혀주는 실용품이자, 한국의 정서와 미감을 담은 전통 공예품입니다. 그중에서도 강릉 지역은 한때 부채 제작의 중심지로, 단오절이 되면 부채 장수들이 모여 장을 이루고 각자의 솜씨를 겨뤘습니다. 선비들은 부채에 시를 적거나 그림을 넣어 선물로 주고받았고, 장터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의 부채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부채는 단순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를 넘어서, 당시 사람들의 감성과 문화적 교류를 담은 매개체였습니다. 특히 대나무는 동양에서 청렴과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졌기에, 대나무 부채는 단순한 여름 소품이 아닌 품격 있는 선물로도 각광받았습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선풍기, 에어컨, 휴대용 선풍기 같은 전자기기의 등장 이후, 부채의 자리는 점점 좁아졌습니다. 게다가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대량 생산 제품들이 전통 수공예를 밀어냈고, 수작업으로 하루에 겨우 몇 자루밖에 만들지 못하는 부채 장수들의 생계는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강릉에서도 손으로 직접 대나무를 가공해 부채를 만드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특히 단오제 행사 때만 간신히 모습을 드러내는 몇몇 장인이 남아 전통을 지키고 있지만, 그조차도 생계를 이어갈 정도의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제 부채는 실용품이 아닌 ‘기념품’이나 ‘공예품’으로 소비되고 있고, 그나마도 관광객의 일회성 소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 장인의 존재는, 과거의 여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거의 마지막 끈과도 같습니다.

 

장인의 하루

이번 단오제 기간 동안 우리는 조용한 뒷골목 장터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한 부채 장인을 만났습니다. 60대 후반의 그는 자신을 "부채쟁이"라 소개하며 웃었습니다. 대나무를 손으로 깎아 틀을 만들고, 천을 입히고, 손잡이에 문양을 새기는 모든 공정이 그의 손에서 이루어집니다. "한 자루 완성하려면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사흘이 걸린다"는 그의 말에는 시간과 정성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장인은 하루 중 가장 이른 시간에 대나무를 손질합니다. 해가 뜨기 전, 아직 서늘한 기운이 남은 아침에 손질을 해야 재료의 수분과 강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칼과 대패로 결을 다듬고, 아주 얇은 부채살을 고르게 잘라내는 일은 온전히 손끝 감각에 의존해야 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합니다.

 

그의 작업대에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습니다. 낡은 연장이지만 다듬어 쓴 흔적, 군데군데 얼룩이 묻은 천조각, 틀어지지 않게 묶어 놓은 부채살 다발. 하나의 부채가 태어나기까지 수십 번의 반복 작업과 정성스런 손길이 담깁니다. 그는 "이게 마지막 여름일지도 모르지요. 내년에도 나올 수 있을지 장담 못해요"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그의 부채에는 특별한 이름도, 화려한 장식도 없습니다. 다만 손님에게 선보일 때는 조용히 펼쳐 보이며, “이건 봄밤에 만든 거예요. 그날은 바람이 좋았거든요”라고 속삭입니다. 바람을 담기 위해 만든 부채에, 그는 바람처럼 스쳐간 시간과 계절의 기운을 담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나가던 젊은 관광객들이 그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부채 하나를 들고 "셀카 찍기 좋은 소품이다"며 웃으며 떠났습니다. 그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옛날엔 부채 하나 사가면서 그 집안 안부도 묻고, 명절 잘 보내란 인사도 했는데 말이죠.”

 

사라지는 기술, 이어야 할 기억

전통 공예는 단순히 기술의 집합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와 지역, 사람들의 삶이 응축된 문화적 결입니다. 대나무 부채를 만드는 기술은 그 지역의 기후, 재료, 손의 감각,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 전수받는 방식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복합적 전통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부채 장인은 아들이 있지만, 이 일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합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누가 이걸 하겠어요. 난 그냥 끝까지 하다 갈랍니다"는 그의 말에는 현실에 대한 체념과 동시에 마지막까지 지켜내려는 고집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최근 강릉시와 몇몇 민속문화보존 단체에서는 장인을 지원하거나 기술 전수 프로그램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회성 행사나 전시로는 오랜 시간 몸에 밴 손의 기술을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공예는 눈으로만 배울 수 없습니다. 손끝으로, 일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에서 배워야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관광지로서의 강릉단오제가 점점 커질수록, 그 안에서 이런 장인의 존재는 점점 더 조용히 밀려나고 있습니다. 축제를 통해 전통을 계승하겠다면서도, 정작 전통을 만들어온 사람들은 변두리로 밀려나는 역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전통 계승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은 아닙니다. 작은 좌판 하나, 작은 바람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는 한 아이에게 부채 하나를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름엔 이게 최고야. 너도 한번 흔들어봐. 바람이 살살 불지? 그게 옛날 사람들의 여름이었단다."

 

바람이 멈추지 않도록

강릉단오제의 현란한 무대와 축제의 뒤편에서, 대나무 부채 장수는 조용히 마지막 여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자루 부채에 계절을 담고, 이야기와 마음을 실어 건네는 그 손길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그 가치는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장인의 모습을 보며 단지 한 사람의 기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 하나의 관계망, 그리고 하나의 감각이 사라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오제를 통해 전통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 중심에는 반드시 사람—그리고 그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합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부채를 흔들면 우리는 그것을 느낍니다. 전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그것을 지키고 흔들어야만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부채 장수의 여름이 정말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그의 손길에서 피어난 바람이 우리의 여름을 다시 감싸주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