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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회룡포의 메밀묵집, 어머니의 손맛이 사라진다

by 조용한 성장 2025. 6. 9.

경북 예천 회룡포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내성천이 S자 형태로 마을을 감싸 안듯이 흐르며 만든 이 비경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펼쳐내는 생태와 인문이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그곳에선 언제나 물소리가 조용히 흐르고, 논밭의 초록이 사계절을 바꾸며 마을의 삶을 지탱해 왔습니다.

 

회룡포의 마을 한켠, 사람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는 작고 오래된 메밀묵집이 있었습니다. 허름한 기와지붕 아래 단출한 나무 탁자 몇 개, 연탄불로 지지던 메밀묵을 담아내던 깊은 대야. 그 집의 메밀묵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이 마을의 추억이고 정서였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 맛을 두고 ‘시골의 맛’이라 말하고, 마을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 손맛’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 묵집의 문은 자주 닫혀 있었습니다. 건강이 악화된 주인 할머니가 더 이상 묵을 쑤지 못하게 되면서, 이곳을 찾아오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맛있는 묵집이 사라졌다는 소회를 나누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한 세대의 기억, 한 지역의 방식, 그리고 한국 농촌이 간직해온 정서와 노동의 전통이 점점 잊혀지는 흐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손맛과 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가능하다면 다음 세대에 무언가를 물려주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예천 회룡포의 메밀묵집, 어머니의 손맛이 사라진다
예천 회룡포의 메밀묵집, 어머니의 손맛이 사라진다

메밀묵의 어제

메밀묵은 한국 전통 음식 중에서도 매우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을 가진 음식입니다. 겉보기엔 단순한 회색 덩어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지혜와 노동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기에, 산골 마을이나 땅이 비옥하지 않은 지역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아 왔습니다.

 

예천 회룡포의 메밀묵은 특히나 그 방식이 독특합니다. 메밀을 직접 갈아 물에 우려낸 후, 고운 체로 몇 번이고 걸러낸 뒤, 며칠간 가라앉힌 앙금만을 남겨 묵을 쑵니다. 불 조절을 위해 연탄불 위에 무쇠솥을 얹고, 나무주걱으로 끊임없이 저어야 합니다. 단 5분만 손을 놓아도 뭉치거나 눌어붙어 버리기에, 묵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온종일 불 앞을 지켜야 하는 고된 작업이 됩니다.

 

그 묵에는 어머니의 노동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메밀을 씻고, 물을 가르고, 연탄에 불을 피우는 일. 한여름 땀에 젖어 가마솥 앞에 선 채로 한 시간 넘게 저어야만 했던 그 시간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닌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묵을 먹은 사람들은 “어머니의 손맛 같다”고 말했던 것이겠지요.

 

회룡포의 묵집, 마을의 부엌

그 묵집은 사실상 마을 전체의 부엌 같은 곳이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농사일 끝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과 묵을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고, 외지 손님들은 예천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숨은 맛집’이라며 입소문을 냈습니다. 좁은 가게 안엔 때때로 장터 같은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습니다.

 

가게의 주인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묵 할매'라 불렸습니다. 본명보다 그 별명이 더 익숙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손으로 쑤어 낸 묵은 탄력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간장 양념 없이도 고소한 맛이 배어 있었습니다. 비법을 물으면 그는 언제나 웃으며 “그저 정성이지”라고만 대답했습니다.

묵 할매는 언제나 손님보다 먼저 앉아 있던 단골들을 챙겼습니다. “아, 무릎 괜찮으셔?”, “어제 밭일하시더니 얼굴이 좀 탄 것 같네.” 이런 말이 건네지던 곳. 그 식당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기억이 오가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고, 자식들이 모두 도시에 나가 살게 되면서 가게는 점점 열리는 날보다 닫히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외지에서 찾아온 이들이 “여기 그 묵집 맞죠?”라고 묻지만, 대답해 줄 이도, 문을 열어줄 이도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조차 “이제 그 묵 못 먹지” 하며 아쉬운 표정만 지을 뿐입니다.

 

손맛의 실종, 공동체의 해체

메밀묵의 손맛은 단지 맛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 내부의 관계, 계절의 감각, 그리고 노동에 대한 존중이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지금 우리가 잃어가는 건 맛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맛을 만들어내는 삶의 구조입니다.

 

한국의 수많은 시골 마을이 그렇듯, 예천 회룡포도 고령화와 인구 감소, 젊은 세대의 이탈로 인해 점점 공동체성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며느리나 딸이 옆에서 할머니의 묵쑤는 법을 배우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전수의 장면조차 사라졌습니다.

 

지역 전통 음식이 사라지는 데에는 단순히 ‘인기 없음’이나 ‘수익성 없음’이라는 경제적 이유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이어받을 사람, 배울 기회, 기억해줄 공동체가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행정적으로 전통음식을 보존하기 위한 지원 정책이나 레시피 기록 사업은 존재하지만, 음식은 문서로 기록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을 통해, 손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이어져야만 진짜 살아 있는 전통이 됩니다.

 

묵 할매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한텐 이 묵이 내 자식이나 다름없어요. 얘가 내 손에서 태어나서,많은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참 고맙죠.” 이 말 속에는, 그저 음식을 만드는 사람 이상의 자부심과 관계가 배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그릇을 기억하며

예천 회룡포의 메밀묵집은 이제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곳에서 쑤어진 묵을 마지막으로 먹어본 사람들은, 단지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유통되던 감정과 노동, 그리고 인간관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전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누군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또 다른 손으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흐름’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흐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강과 마을이 만나던 그 풍경,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나던 들판,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묵을 쑤던 어머니 같은 존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단 예천의 메밀묵집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삶의 맛’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여름, 누군가 회룡포를 찾아 다시 그 묵을 찾을 때, “그 할머니, 아직 계세요?”라는 물음에 “응, 아직 쑤셔”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를.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