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바다는 언제나 바람에 실려 온 생명의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봄이면 수천, 수만 마리의 멸치 떼가 검푸른 바다를 은빛으로 수놓았고, 그 멸치를 잡기 위한 어부들의 고함과 물살을 가르는 그물의 소리가 마을을 깨웠습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희미한 여명 아래 조용히 준비된 배들은 멸치가 몰려든다는 신호가 오면 순식간에 항구를 벗어나 바다 위로 흩어졌습니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항 부근의 작은 어촌은 오래전부터 ‘멸치털이’로 유명했습니다. 일반적인 어로 방식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는 수확한 멸치를 바닷가 모래밭에서 직접 ‘털어’내는 고유한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이른바 ‘멸치털이’는 어선에서 끌어올린 그물을 육지 가까이 옮겨 놓고, 그물 속에 엉킨 멸치를 하나하나 손으로 풀어내는 노동집약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수십 명이 줄을 서서 그물을 잡고 흔들면, 마치 춤을 추듯 멸치들이 튀어나왔고, 그 순간마다 물방울과 햇살이 뒤섞여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춤은 점점 멈추고 있습니다. 고령화, 기후 변화, 어획량 감소, 그리고 전통 방식의 비효율성 등 다양한 이유로 이 독특한 멸치털이 풍경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단지 한 가지 어업 기술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한 시대의 생업, 공동체,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연결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멸치떼의 계절
멸치는 남해에서 봄철을 대표하는 수산물입니다. 특히 4월에서 6월 사이, 따뜻해진 수온과 함께 어마어마한 규모의 멸치떼가 남해 앞바다로 몰려듭니다. 이 시기 남해의 바다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듯 요동치고, 바닷새, 고래, 돌고래까지 함께 어울리는 장관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 바다를 읽어내는 것은 어민들의 오랜 경험과 직감입니다.
어민들은 조류의 방향, 물살의 세기, 해무의 농도, 바닷새의 움직임 등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멸치떼의 위치를 추적합니다. 그물은 보통 수십 미터 길이로 바다에 펼쳐지고, 두 대의 배가 이를 서로 당기며 멸치를 몰아넣습니다. 이 방식은 단순한 조업이 아니라, 바다와의 대화이며, 자연과의 리듬에 맞춘 의식과도 같았습니다.
한창 멸치가 몰리는 시기에는 온 마을이 분주해졌습니다. 아침 일찍 출항한 배가 돌아오면, 어부들은 그물을 들고 해변에 들어서고, 기다리던 마을 주민들이 그물을 함께 풀었습니다. ‘털이’는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는 공동작업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 간의 협력과 유대는 더욱 깊어졌고,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오고, 웃음소리가 넘쳐났습니다. 멸치를 털면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서 마을의 역사와 감정의 흐름이 담긴 구술 전통이기도 했습니다.
그물을 흔드는 사람들
멸치털이는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물에 엉킨 멸치를 억지로 잡아당기면 멸치의 살이 찢어지고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손으로 조심스럽게 털어야 했습니다. 수십 명이 일렬로 서서 그물을 동시에 좌우로 흔드는 그 모습은 멀리서 보면 바다와 하나가 된 사람들의 춤처럼 보였습니다. 이른바 ‘그물춤’이라는 별칭도 그래서 생겼습니다.
그 춤의 선두에는 늘 어촌의 어르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물의 무게와 물살의 반항을 온몸으로 견디며 다음 세대에 기술을 보여주었습니다. 팔뚝은 검게 그을렸고 손은 굳은살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이기에, 그들은 멸치털이를 단순한 생업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의 삶이었고, 가족을 먹여 살린 기술이며, 마을의 전통이자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춤의 선두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대부분 도시로 나가 정착했고, 남은 이들 중에도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멸치털이 현장에는 이제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그물을 흔들지만, 점점 더 힘겹게, 더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손맛과 바닷바람
남해의 멸치가 유명한 이유는 단지 어획량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그 손맛과 바닷바람 때문입니다. 멸치털이 과정에서 생선은 자연스럽게 해풍에 말려지는데, 이 과정에서 잡내가 빠지고 고소한 풍미가 살아납니다. 말리기 전에 털어내는 멸치는 내장이 온전히 보존되어 젓갈이나 육수 재료로도 최상급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많은 음식 전문가들이 남해 멸치를 두고 “뼈까지 고소하다”고 말한 데에는 이런 맥락이 있습니다. 기계적이지 않고, 사람이 손으로 다듬은 멸치는 그만큼 품질이 뛰어났고, 그래서 남해 멸치의 브랜드 가치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품질은 높아졌지만 생산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통 방식으로 작업할 인력은 거의 없고, 젊은 사람들은 손으로 멸치를 털기보다는 기계화된 생산라인을 선호합니다. 결과적으로 멸치털이는 점점 이벤트성, 관광형 체험 행사로 축소되고 있으며, 실제 생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라지는 풍경, 남는 기억
남해군은 매년 봄 멸치털이 체험 행사를 통해 이 전통을 알리고 있지만, 행사 자체가 전통을 보존하기엔 역부족입니다. 본래의 작업은 이른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이어지는 고된 과정인데, 체험은 1시간 남짓, 관광객의 흥미에 맞춰 편성된 형식적 이벤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통을 기록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지역문화원 주관의 구술채록, 사진집 등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기록’은 결코 ‘전승’이 될 수 없습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기술, 몸으로 익히는 감각, 바닷바람과 땀의 냄새, 그것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남해에서 멸치털이를 하던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사는 길이었지. 멸치 팔아서 자식 대학 보내고, 집 고치고, 마을 잔치하고. 힘들어도 다 같이 했으니까, 외롭지 않았어요.” 그 말은 단순히 어업의 회고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온기와, 노동을 중심으로 모였던 사람들의 정서를 되새기게 합니다.
바다 위 마지막 춤을 기억하며
멸치털이는 단순한 어업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바다, 공동체가 어우러진 문화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은빛 멸치의 반짝임뿐 아니라, 그것을 잡기 위해 서로를 부르며 나아갔던 배, 그물을 함께 들던 어깨, 소금기 어린 손을 마주 잡던 그 순간들입니다.
그 바다의 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남아 있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번쯤은 그 그물 끝에 손을 얹어 흔들어봐야 합니다. 어쩌면 그때 우리는, 다시 잊고 있었던 어떤 감각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