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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조릿대 바구니, 바람 속에 엮인 섬의 기술

by 조용한 성장 2025. 6. 10.

제주 바닷바람이 반짝이는 해안을 스치고, 한라산 자락의 숲길을 파고들며 시원한 숨결을 전합니다. 그 안에 숨은 조릿대는 한라산 고지부터 섬 아래 들판까지 제주 전역을 은은한 녹음으로 채우는 식물입니다. 벼과에 속하는 이 작은 대나무는 마디가 뚜렷하고 질기며, 바구니나 줌 바구니처럼 생활용품의 주요 원료로 쓰여 왔습니다 . 조릿대는 제주의 바람과 햇빛을 품은, 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식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릿대가 ‘애물단지’라는 말까지 듣습니다. 과도한 번식력이 한라산 생태계를 위협하고, 보호 논의의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이 사연 속에는, 섬사람들이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삶과 분리되지 않은 조릿대 바구니 장인을 잃어가는 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

 

저는 이 글을 통해 제주 조릿대 바구니라는 전통 공예 속에 담긴 섬의 감각과 장인 정신을 기록하고, 바람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기술을 다시 사람들의 손끝으로 이어가기 위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제주 조릿대 바구니, 바람 속에 엮인 섬의 기술
제주 조릿대 바구니, 바람 속에 엮인 섬의 기술


생명력 강한 대나무, 조릿대

제주조릿대(Sasa quelpaertensis Nakai)는 한라산에서 토사 유출 방지, 탄소 흡수 같은 생태학적 중요성을 지닌 대표 식물로, 제주 자연의 구조와 기능을 지탱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조릿대의 뿌리시스템은 땅속 1m 이상 넓게 퍼지고 줄기는 땅 위를 촘촘히 덮으며, 토양 안정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일부 구간에서 조릿대를 제거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제주 자연의 일부임은 분명합니다.

조릿대는 대나무처럼 굵지는 않지만, 초록 줄기와 단단한 마디, 섬세한 잎이 특징입니다. 두 개 이상의 분골(대)가 덩어리로 자라며 땅 위를 넓히다 보니 자연스레 자재로서 가치가 컸습니다. 제주에서는 바구니, 바닥깔개, 심지어 담뱃대나 낚싯대 같은 다용도 생활용품까지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조릿대 바구니를 제대로 만드는 장인은 대부분 고령이며, 제주 곳곳에서 바구니 제조 기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바구니 장인의 하루

제주시 외곽 한 조릿대 숲 속, 이곳에도 조릿대 바구니 장인이 계십니다. 그의 이름은 ‘김순자’(가명) 어르신입니다. 할머니는 새벽이면 나무칼을 챙겨 포근한 숲길로 향합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줄기를 골라 수확하고, 마디를 가르며 하나하나 다듬는 것으로 바구니는 시작됩니다.

 

“이 안에는 제주 바람과 손끝의 기억이 들어 있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떼를 묶어 정리합니다. 그 떼는 반나절 말린 뒤 다시 손질하여 실처럼 얇게 쪼개집니다. 이 얇은 조릿대 살로 바구니의 뼈대를 세우고, 촘촘하게 엮어 올려야 합니다. 간혹 일부 줄기는 다른 자재로 대체되지만, 할머니는 “믹스 된 바구니는 기계로도 만들 수 있다”며 순수 조릿대만으로 작업하십니다.

바구니 한 개를 완성하려면 며칠이 걸리기도 합니다. 좁은 틈 사이에 줄기를 빼곡히 엮는 이 과정은 기계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정밀성과 감각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바람과 바구니에 깃든 기억

조릿대 바구니는 단순한 물건이 아닙니다. 제주에서는 밥상을 둘러싼 담기, 해산물이나 채소를 씻고 담거나 보관하는 작업용, 심지어 조미료나 김치용 바구니로도 쓰였습니다. 그 감성 또한 나무나 합성섬유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주의 바람이 불면 바구니 안의 조릿대는 바람결에 속삭이듯 부드럽게 흔들립니다. 할머니는 “바람에 기운을 실어서 바구니가 숨 쉬는 듯 보인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살아 숨 쉰다고 느끼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어린 시절, 제주 마을의 누군가는 이렇게 자랐습니다. 바구니 짜는 할머니 옆에서 한 조각 떨어진 잎을 따고, 바구니의 뼈대를 보며 고요히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삶의 풍경 속에 ‘엮기’라는 단순 행위가 섬의 리듬과 함께 이어졌습니다.

 

기술의 위기와 불확실한 계승

하지만 지금 그 풍경을 찾는 것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바구니 짜는 일을 ‘놀이’나 ‘이벤트’로만 알고, 삶 속 전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관공서에서 연 ‘체험형 바구니 짜기’ 행사도 늘고 있지만, 직접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바구니를 만들기 위한 기술은 전혀 전수되지 않습니다.

 

김순자 할머니는 말합니다.

“한 번 행사로 만들어 본다고 해서 기술이 남나요? 손에 익어야죠. 내 손에 익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 없습니다. 우리는 손끝에서 만든 기술이 큰 가치를 갖게 되지요.”

 

지자체에서는 제주조릿대 활용을 산업화 전략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차나 음료 원료, 혹은 친환경 자재로 팔겠다는 계획이 이어지지만, 바구니 장인의 삶이나 기술 전수는 빠져 있습니다 . 조릿대가 환경 파괴 요인으로 비판받는 동안, 바구니 장인들은 무보수로 잎을 따고 엮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구니 속 듬뿍 담긴 공동체

옛 제주에서는 조릿대 바구니를 만들고 고치는 일에 온 가족이 참여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아이들도 바구니 뜯기를 도왔고, 밤에는 횃불 옆에서 가족이 둘러앉아 엮고 깎았습니다. 바구니 한 개에는 손길의 온기뿐 아니라 계절과 가족의 삶이 함께 담겼습니다.

 

그 기억은 이제 사진첩 속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마을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이 바구니를 짜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청소년에게 공개하고, 학교 교육 자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이것은 기술을 넘어서, 섬의 리듬과 가족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장치입니다.

 

바람과 손끝, 잇는 일

조릿대 바구니는 제주라는 섬에서만 피어난 기술이며, 섬의 바람과 땀과 기억이 엮인 결과물입니다. 바구니는 죽은 기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래와 같은 일을 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 전수 프로그램 활성화 : 장인과 청년이 장시간 함께 생활하며 기술을 익히는 형태의 현장 계승

- 공예와 생태의 결합 : 바구니, 야자기술과 조릿대의 생태적 가치를 연계한 교육적 전시

- 공정한 보상과 시장 조성 : 장인의 수고와 지속가능성을 반영하는 합리적인 가격 체계 구축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바람 속 조릿대 잎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기술이 바람을 타고 오래도록 흔들릴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