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7 완도의 장례소리패, 마지막 길을 함께 걷던 사람들 남도의 섬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유한 장례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완도 지역의 장례소리패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와 북장단으로 품어내며 망자를 배웅하던 독특한 장례 풍습으로 기억됩니다. 조용한 섬마을 골목을 따라 울려 퍼지던 그 울림은 단순한 곡조나 구호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감싸는 공동체의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슬픔은 덜고, 영혼은 달래며, 사람은 남는다”는 말이 이처럼 피부로 와 닿던 순간이 또 있을까요? 완도의 장례소리패는 망자의 넋을 달래는 동시에 남은 이들의 마음을 함께 추슬렀습니다. 장례라는 무거운 의례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를 의지하며 슬픔을 나누었고, 그 속에서 이어져온 정서와 문화는 마을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소리는 점점 사라져가.. 2025. 6. 12. 삼척의 섶다리, 마을을 잇던 나무다리의 기억 강원도 삼척. 동해와 접한 바닷마을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맑은 계곡, 그리고 오래전부터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살아온 작은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었고, 공동체의 일상이었습니다. 그 마을들 사이를 잇던 것이 바로 ‘섶다리’였습니다. 나무와 나무를 이어 만든 이 다리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삶을 나누는 장소였고, 계절을 건너는 다리였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그 위를 건너던 기억, 홍수가 나면 함께 무너지고 함께 다시 놓던 풍경, 그리고 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나무 궤짝의 진동까지 — 섶다리는 삼척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2025. 6. 12. 고창의 발효젓갈, 갯벌에서 묻은 시간의 맛 전라북도 고창은 단지 동학농민운동의 역사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되는, 수천 년 갯벌과 인간의 교류가 켜켜이 쌓인 고장입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곳의 갯벌은 단순한 자연 생태계가 아니라, 수많은 세대가 삶의 방편으로 마주했던 노동의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고창의 바다를 따라 자리한 작은 어촌 마을들에서는 지금도 이른 새벽 갯벌을 누비는 할머니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발걸음은 단순한 조개나 낙지를 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발효젓갈의 재료를 채취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합니다. 멸치, 새우, 황석어, 전어 같은 생선들은 소금과 갯벌의 흙, 그리고 그 지역의 공기와 햇살 속에서 서서히 삭고, 깊고도 구수한 젓갈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는 대형마트에서도 손쉽게 구매.. 2025. 6. 11. 봉화의 전통 활 만들기, 나무와 힘줄의 대화 한국은 오랫동안 활의 민족이라 불려왔습니다. 궁술이 단순한 무기 기술을 넘어 정신 수양이자 민속문화로 자리 잡았던 나라이며, ‘활 잘 쏘는 사람’은 신뢰와 덕망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 무과시험에서도 가장 중요한 항목이 활쏘기였고, 병영이나 향교 주변에는 활터가 있어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 노인들까지 일상 속에서 활을 익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활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활을 쏠 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현대식 양궁과는 전혀 다른 전통 궁술, 그보다 더 섬세하고 복잡한 ‘전통 활 만들기’는 더욱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특히 봉화, 안동, 영양 등 경북 북부 지역에서 이어져오던 복합궁 제작 기술은 과거 전국 장인들이 찾던 명소였지만, 지금은 단 한두 사람만이 그 기술.. 2025. 6. 11. 청송 삼베짜기, 베틀 소리가 끊긴 마을 경상북도 청송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조용한 산골 마을엔 그 자연만큼이나 오래된 손길의 흔적이 있습니다. 바로 삼베입니다. 뽀얀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안방, 뚜벅뚜벅 걸어가는 어머니의 맨발 아래에서 베틀이 한 올 한 올 길게 울려 퍼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청송에서는 그런 소리가 계절처럼 당연하게 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삼베는 더운 여름 땀을 식혀주던 농부의 옷이었고, 생명을 맞이한 아기의 포대기였으며,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배웅할 때 입혔던 수의이기도 했습니다. 이 천을 짜기 위해 여인들은 삼을 심고, 껍질을 벗기고, 삶고 말리고 삶고 말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손끝으로 엮고, 인내로 다듬었던 삼베는 단순한 섬유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생활이고.. 2025. 6. 10. 제주 조릿대 바구니, 바람 속에 엮인 섬의 기술 제주 바닷바람이 반짝이는 해안을 스치고, 한라산 자락의 숲길을 파고들며 시원한 숨결을 전합니다. 그 안에 숨은 조릿대는 한라산 고지부터 섬 아래 들판까지 제주 전역을 은은한 녹음으로 채우는 식물입니다. 벼과에 속하는 이 작은 대나무는 마디가 뚜렷하고 질기며, 바구니나 줌 바구니처럼 생활용품의 주요 원료로 쓰여 왔습니다 . 조릿대는 제주의 바람과 햇빛을 품은, 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식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릿대가 ‘애물단지’라는 말까지 듣습니다. 과도한 번식력이 한라산 생태계를 위협하고, 보호 논의의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이 사연 속에는, 섬사람들이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삶과 분리되지 않은 조릿대 바구니 장인을 잃어가는 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 저는 이 글을 통해 제주 조릿대 바구니라는 전통 공예.. 2025. 6. 10.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