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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옥상, 발밑이 아닌 하늘을 보는 자리 도시에서 가장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공간.누구의 집 위에 있고, 누구의 회사 위에도 있지만, 정작 누구의 일상에도 포함되지 않는 공간.바로 건물의 옥상입니다.옥상은 흔히 ‘끝’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더 이상 위가 없는 지점. 하지만 그곳에 올라가 보면, 이상하게도 아래가 아니라 위를 더 많이 바라보게 됩니다. 건물 옥상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감각이 아니라 하늘 아래 있다는 감각을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오늘 이 글은 그런 감각에서 시작됩니다.어쩌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고,그 시간 동안 나는 '위'를 향한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도시의 소음과 고층 빌딩의 그림자 아래서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 2025. 7. 11.
삶이 헝클어졌을 때, 세탁기는 돌아간다 – 셀프 빨래방에서의 느린 정리 \도시에서 가장 빠른 공간은 아마도 엘리베이터일 것입니다. 버튼 하나로 수십 층을 단숨에 오르고, 몇 초의 정적 후 문이 열리면 또다시 속도로 복귀하니까요. 그렇다면, 가장 느린 공간은 어디일까요? 여러 곳이 떠오르겠지만, 나는 ‘셀프 빨래방’을 떠올립니다.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것이 셀프 빨래방을 가장 느린 공간으로 만듭니다. 최소한 세탁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30분, 혹은 1시간. 누군가는 그 사이 근처 카페에 다녀오고, 누군가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화면을 보며 기다립니다. 나는 이 장소가 묘하게 위로가 된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자동으로 흘러가고, 내가 손 쓸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도감을 줬습니다. .. 2025. 7. 10.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 – 무인택배함 앞에서의 짧은 사유 무인택배함 앞에 선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무표정에 가깝습니다.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비밀번호 여섯 자리를 누르고, 잠시 “삐” 소리가 울리고, 탁 열리는 문 하나. 물건을 꺼내 들고 조용히 떠나는 사람. 이 일련의 행동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쩐지 그 단순함 속에 많은 말이 생략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이제는 택배기사도, 판매자도, 이웃도 마주하지 않아도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무인택배함은 그야말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언가를 주고받는 공간’입니다.사람은 없고 물건만 오가는 구조. 그러나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 생활의 무게, 혹은 개인적인 사정들이 스며들어 있습니다.택배를 받는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물건이 지금 이 시점의 나에게 필요하다.. 2025. 7. 9.
누군가를 기다리는 돈, 혹은 마음 – ATM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자동현금입출금기, 이른바 ATM.도시 곳곳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기계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대형 마트 한쪽 구석, 은행 외벽, 지하철 역사, 24시간 편의점 앞. 수없이 다양한 위치에 놓인 이 기계 앞에서 사람들은 늘 비슷한 자세로 서 있습니다. 작은 화면을 바라보고, 숫자 버튼을 누르고, 어딘가 잠시 멈춰 선 채 무언가를 계산합니다. ATM은 말이 없고, 감정이 없고, 오직 기능만을 수행하는 기계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앞에 서 있는 인간은 언제나 감정의 무게를 지닌 채로 서 있게 됩니다. 단지 돈을 꺼내러 갔을 뿐인데, 우리는 거기서 자존감, 피로, 불안, 체념, 조심스러움, 혹은 은근한 자신감 같은 것들과 마주하게 되니까요.그리고 그 짧은 1~.. 2025. 7. 8.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버리고, 분류하고, 기억한다 – 분리수거장에서 시작된 성찰 도시의 모서리에 늘 존재하지만, 누구도 오래 머무르지 않는 공간. 분리수거장은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은 거기서 조용히, 빠르게, 무언가를 ‘버립니다’.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 수명을 다한 것,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야 할 것들. 포장지, 병, 캔, 플라스틱, 종이.그곳은 말하자면 일상의 퇴장 장면이 쌓이는 무대입니다. 늘 무심한 표정으로, 바쁘게 들고 와 무언가를 내려놓고, 서둘러 등을 보이고 돌아서는 공간. 냄새가 나고, 손이 더러워지고, 어쩐지 머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하지만 바로 그 분리수거장에야말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단서들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무엇을 샀고, 어떻게 소비했고,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버림’은 단순한 폐기가 아니라, ‘기억의 구조’가 작동하는.. 2025. 7. 4.
아무도 듣지 않아도, 나는 노래했다 - 코인노래방에서 도시의 틈새 공간에서 발견하는 삶의 철학을 글로 적어가면서, 언젠가 꼭 다뤄보고 싶었던 장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코인노래방’입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 공간. 누군가는 짧은 흥을 위해 들르고, 누군가는 울음을 참기 위해 찾아옵니다.이 글은, 그 작고 어두운 방 안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우리 안의 이야기를 담아보려는 시도입니다.노래가 아닌, 목소리를 부른다는 일코인노래방에서는 대체로 혼자 노래를 부릅니다. 짧은 시간, 몇 곡. 그저 마이크를 들고 자신만의 소리로 공간을 채우는 일이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기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생각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자주 듣지 못합.. 2025.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