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송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조용한 산골 마을엔 그 자연만큼이나 오래된 손길의 흔적이 있습니다. 바로 삼베입니다. 뽀얀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안방, 뚜벅뚜벅 걸어가는 어머니의 맨발 아래에서 베틀이 한 올 한 올 길게 울려 퍼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청송에서는 그런 소리가 계절처럼 당연하게 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삼베는 더운 여름 땀을 식혀주던 농부의 옷이었고, 생명을 맞이한 아기의 포대기였으며,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배웅할 때 입혔던 수의이기도 했습니다. 이 천을 짜기 위해 여인들은 삼을 심고, 껍질을 벗기고, 삶고 말리고 삶고 말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손끝으로 엮고, 인내로 다듬었던 삼베는 단순한 섬유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생활이고, 한 시대의 철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청송의 어느 마을에도 베틀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텅 빈 마루에 먼지가 내려앉고, 오래전 어머니들이 남긴 삼베 조각만이 그 시절을 기억할 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잊혀가는 직조기술을 소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삶의 방식이자 여성 노동의 상징이었던 삼베짜기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며, 그것이 왜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아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삼베의 기원
삼베는 인류가 가장 오래도록 써온 식물성 섬유 중 하나로, 그 뿌리는 약 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삼베는 여름용 옷감으로 널리 쓰였고, 한국에서도 고조선 시대부터 삼(大麻)을 재배하고 그 섬유를 활용해 생활용품을 만들어왔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삼베가 백성들의 일상적인 옷감으로 자리잡으며, 포(布)의 일종으로 세금을 대신하거나 공물로 바쳐질 만큼 귀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청송은 그중에서도 삼베의 명산지로 이름을 날렸던 지역 중 하나입니다. 물 빠짐 좋은 산자락과 따뜻한 기후는 삼 재배에 이상적이었고, 그 삼으로 옷감을 짜는 기술은 대대로 어머니에서 딸로, 며느리에서 손녀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삼베의 짜임새와 품질은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됐고, 청송의 여인들은 ‘손 끝이 맵다’는 말로 그 솜씨를 인정받았습니다.
삶으로 짜던 천
청송 삼베의 생산 과정은 단순한 직조 기술을 넘어선 공동체의 노동이자 여성들의 지혜였습니다. 삼을 기르고 껍질을 벗기는 ‘삼 껍질 벗기기’부터 시작해, 껍질을 찢어 다듬고 삶고 말리는 ‘삼 고르기’ 작업은 한 사람이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동네의 여자들이 모여 며칠간 집집마다 돌아가며 함께 작업하는 ‘품앗이’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삼 실 잣기’라는 세밀한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삼베 실은 보통 길고 고르게 뽑기 어려워, 이를 한올 한올 손으로 매끈하게 잇는 정성이 필요했습니다. 엉킨 실을 풀기 위해선 발로 고정하고, 두 손으로 조심스레 잡아당겨야 했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실이 끊어지기에, 삼베를 짜는 날은 방의 문을 모두 닫아야 했고, 아이들마저 조용히 숨죽이며 놀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베틀 작업에 들어갑니다. 베틀은 조작이 쉽지 않은 도구입니다. 뒷북 소리처럼 “턱, 툭, 쿵쿵” 울리는 소리는 단순히 천이 짜여지는 소리가 아니라, 여인의 한숨과 기다림, 생계를 향한 의지가 담긴 리듬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따라 마을의 하루가 흘렀고, 베틀 소리가 멈추는 날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정적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사라진 소리의 이유
청송의 삼베짜기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부 마을에서 꾸준히 이어졌지만, 이후 급속히 사라졌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산업화와 함께 찾아온 기계직조와 합성섬유의 등장이었습니다. 값싼 나일론과 면이 시장을 점령하면서 삼베는 ‘불편한 옷감’으로 치부됐고, 일일이 손으로 짜야 하는 번거로운 삼베는 자연스럽게 외면당했습니다.
또한 여성의 역할 변화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농번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일과 삼베짜기에 할애하던 농촌 여성들이 도시로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베틀 앞에 앉을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삼베를 짜던 기술은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를 배우지 못한 딸들은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솜씨를 흉내 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기술 하나의 단절이 아니라, 공동체 구조의 붕괴이기도 했습니다. 함께 삼을 벗기던 마을 사람들, 품앗이로 맺어진 관계망, 아이들을 재우고 모여 수다를 떨며 실을 잣던 저녁들. 그것들은 모두 ‘손맛’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술의 복원, 기억의 노력
다행히도 청송에서는 삼베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200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40호로 ‘삼베짜기’가 지정되면서, 청송 출신의 장인 몇몇이 그 명맥을 간신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래된 베틀을 꺼내 정비하고, 학교와 박물관, 전통문화 체험 공간 등에서 짜임새 있는 삼베짜기 시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승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삼베짜기는 단시간에 익힐 수 없는 기술이고, 이를 전수받기 위해선 몇 년간 집중적인 수련이 필요합니다. 현재 기술을 보유한 장인 대부분이 70대 이상 고령으로, 삼베 기술의 맥을 이어줄 젊은 세대는 매우 드뭅니다.
최근에는 전통 섬유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친환경 의류, 자연염색, 슬로우패션 등의 키워드와 함께 삼베가 재조명되고 있긴 합니다. 이를 활용한 테이블보, 소형 파우치, 명상복, 여름용 침구 등은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장적 접근만으로는 기술 자체를 온전히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사라진 베틀 소리를 위한 기록
베틀 소리는 이제 청송의 마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안방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베틀은, 이제 마치 조용히 숨을 멈춘 채 낡은 창고나 박물관의 유리장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한때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들의 옷을 짓고, 혼례와 장례의 의복까지 짜냈던 생명의 도구였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아는 이마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섬유가 짜이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름 땡볕 아래서도 땀을 훔치며 실을 엮어 나가던 어머니의 얼굴, 그 손끝에서 매끈하게 뽑아지던 실, 바람에 펄럭이던 새하얀 삼베치마,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둘러싸고 있던 조용하고 단단한 공동체의 숨결이 함께 엮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베짜기는 단지 한 시대의 직업이나 기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리듬이자, 손끝으로 전해지던 삶의 기억이었습니다. 예컨대, 같은 마을의 여인들이 모여 품앗이하며 함께 삼을 벗기고 삶는 일은 단지 노동을 분담하기 위한 실용적인 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식 자랑도 하고, 농사 걱정도 함께 나누던, 감정의 흐름이 존재했습니다. 그 작은 모임 하나하나가 공동체의 혈관처럼 삶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 그 공동체는,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마을엔 빈집만 늘어갑니다. 돌아오지 못한 자식들은 부모가 떠난 후에야 고향을 찾고, 그마저도 추억을 더듬는 데 그칠 뿐입니다. 그렇게 마을은 사람보다 기억이 더 많아진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을 완전히 잊어버려선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전통문화 보존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이 기술을 복원하고 재조명하는 일은,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균형’을 되찾는 일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량생산, 빠른 소비, 편리함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지만, 삼베를 짜는 손길에서 배울 수 있는 느림과 정성, 기다림의 가치는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더 필요한 자산이 아닐까요?
실제로 최근의 몇몇 움직임은 희망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부 장인들은 삼베짜기를 체험형 교육으로 전환하여 학생들과 일반인에게 전통직조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으며, 지역 축제에서는 삼베옷 입기 체험, 옛 베틀 시연 등이 포함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크고 빠르게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씨앗은 곳곳에서 움트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슬로우패션과 친환경 섬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삼베는 그 소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화학염료 없이 염색된 자연섬유는 알레르기 방지, 통기성, 항균성 면에서 현대 소비자에게도 큰 매력을 주며, 삼베로 만든 여름용 침구, 베개 커버, 명상복 등이 조금씩 그 수요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은 단지 문화 보존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회복과도 연결될 수 있는 여지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전통이 단절되지 않도록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소재, 훌륭한 기술도 그것을 이어갈 사람이 없으면 결국 기억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인의 손길과 감각을 기록하고, 다음 세대가 그 문을 다시 열 수 있도록 제도적, 정서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이 글이 조금이나마 그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베를 짜던 뒷모습을 떠올린다면, 혹은 낯선 기술이지만 아름다웠던 삶의 방식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음 세대가 그 베틀 앞에 다시 앉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이 기록은 그날을 위한 씨앗입니다. 언젠가 조용한 산골 마을의 마루에서 다시 “턱, 툭,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그것은 단지 천을 짜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놓쳤던 것들을 되찾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