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 동해와 접한 바닷마을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맑은 계곡, 그리고 오래전부터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살아온 작은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었고, 공동체의 일상이었습니다.
그 마을들 사이를 잇던 것이 바로 ‘섶다리’였습니다. 나무와 나무를 이어 만든 이 다리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삶을 나누는 장소였고, 계절을 건너는 다리였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그 위를 건너던 기억, 홍수가 나면 함께 무너지고 함께 다시 놓던 풍경, 그리고 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나무 궤짝의 진동까지 — 섶다리는 삼척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섶다리를 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새로 지어진 콘크리트 다리들이 실용성과 안정성을 내세우며 그 자리를 대신했고, 섶다리는 사라졌거나, 몇몇 관광지에서 '재현물'로만 남아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오래된 다리 하나의 역사에 대한 회고 때문이 아닙니다. 섶다리는 삼척이라는 지역의 노동, 환경, 공동체, 그리고 지혜를 고스란히 담고 있던 문화의 한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화가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나무다리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려 합니다.
섶다리라는 기술
섶다리는 현대 건축 기준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불안정한 구조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섶다리는 철저히 자연환경에 맞춰진, ‘지역 특화형 기술’이었습니다. 특히 삼척처럼 여름철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하고 하천 유량이 급변하는 지역에서는 섶다리만큼 적합한 다리도 드물었습니다.
구조는 단순했습니다. 큰 통나무를 가로로 놓고 그 위에 작은 가지나 솔가지, 때로는 잡목들을 덧대어 길게 이어 다리를 만든 뒤, 그 위에 돌을 올려 눌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천 바닥에 기둥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물살이 세질 경우에도 구조물 전체가 무너지기보다 물살을 타고 흘러내려가며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무너진 섶다리는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모여 쉽게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대나무, 참나무, 소나무 등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활용되었고, 다리를 놓는 시기와 해체하는 시기도 계절과 연동되어 있었습니다. 장마가 오기 전 봄에는 다리를 놓고, 가을이면 자연스럽게 철거하거나 다시 손을 보았습니다.
즉, 섶다리는 단지 다리가 아니라 계절과 환경을 읽는 기술이었고, 공동체의 협력이 집약된 구조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전통기술'이라 부르는 것들 대부분이 그렇듯, 섶다리는 단순한 수공예품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자 자연과의 조율이었습니다.
마을과 다리의 관계
삼척의 섶다리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목이었지만, 그 기능은 단순히 '이동'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장날이면 섶다리를 건너 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혼례를 치르는 신부 행렬이 그 다리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어린이들은 그 다리에서 놀았고, 어른들은 거기서 담소를 나누며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특히나 중요한 건, 섶다리를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다리를 만든다는 것은 곧 마을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였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나무를 베어오고, 누군가는 가지를 다듬고, 누군가는 돌을 운반했습니다. 서로의 손발을 맞추지 않으면 다리가 제대로 놓이지 않았고, 홍수철에는 모두가 모여 다리를 지키고 보수했습니다.
이러한 협력은 단지 물리적인 작업만이 아니었습니다. 섶다리를 만드는 날은 곧 ‘행사’였고, 일하고 난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막걸리를 돌리며 친목을 다졌습니다. 지금은 그런 ‘공동체 노동’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섶다리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상징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불안정한 다리이기에, 서로 손을 잡고 건너야 했고, 누구든 건너는 이의 안전을 살피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지금의 사회가 점점 개별화되고 단절되어가는 시대에, 섶다리의 구조는 오히려 ‘함께’라는 단어를 되새기게 만듭니다.
사라진 다리, 잊힌 기억
삼척의 여러 섶다리들은 1980년대 이후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로 확장, 교량 현대화, 기계장비의 도입 등으로 인해 섶다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조물’로 분류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아쉬워했지만, 곧 더 튼튼하고, 물에 무너지지 않으며,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콘크리트 다리에 익숙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섶다리는 서서히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다리도 많고, 그 구조를 기억하는 어르신들도 이제는 거의 없습니다. 일부 마을에서는 축제나 관광 목적의 재현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과거의 생활 도구라기보다 ‘쇼윈도’ 속 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쉽게 ‘불편함’을 벗어던지고, 그 불편함 속에 있던 ‘공동체’까지도 함께 버렸을까요? 섶다리는 불편했지만, 다리 하나에 온 마을이 담겨 있었고, 계절의 감각이 스며 있었으며,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오갔습니다. 그것은 단지 나무다리의 사라짐이 아니라, 한 시대의 방식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섶다리는 단순한 옛 구조물이 아니라, 오늘날 도시화와 효율 중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무언가의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더 빠르고, 더 편하고, 더 강한 것을 원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관계와 기억, 그리고 느림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다시, 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삼척의 섶다리는 이제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구조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섶다리는 우리에게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우리를 연결하고 있었는가?', '그 연결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연결을 어떤 식으로 포기했는가?'
지금도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는 옛 전통 기술과 생활방식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다리 하나, 음식 하나, 노래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그 배경에 깃들어 있던 수많은 이야기와 사람들도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은 기록될 수 있지만, 기억은 사람을 통해서만 살아갑니다.
삼척의 섶다리는 비록 지금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품고 있던 철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자연과의 관계, 사람 사이의 신뢰, 공동체의 노동, 계절의 감각, 그리고 삶의 속도. 이러한 것들은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충분히 되살릴 수 있는 가치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다시 다리를 놓아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나무와 나무를 엮듯, 사람과 사람을, 기억과 현재를 잇는 다리를 말입니다. 물살에 휩쓸려도 다시 만들 수 있었던 섶다리처럼, 우리의 삶도 관계도 얼마든지 다시 잇고, 세울 수 있습니다.
다음에 삼척을 걷게 된다면, 당신은 어쩌면 하천 한가운데 돌무더기 하나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돌이 과거 섶다리의 흔적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지만, 누군가 그걸 기억해낸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순간 섶다리는 다시 우리 안에 놓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