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주의 삶 그 자체였고, 역사였으며, 섬사람들의 숨결이었습니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일상은 바람을 이겨내는 법, 파도에 순응하는 법, 그리고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몸으로 배워가며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제주의 해안 마을들에 오래도록 함께해온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테우’입니다.
테우는 제주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사용돼 온 전통 나무배입니다. 크지 않은 체구에 투박한 외형을 가졌지만, 그 안에는 제주 어민들의 지혜와 생존의 기술이 녹아 있었습니다. 테우는 물질하러 나가는 해녀들의 짐을 실어 나르고, 연안 어로에 쓰였으며, 섬과 바다 사이의 생활을 연결하던 소박한 교통 수단이자 노동의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습니다. 엔진이 달린 어선이 보급되었고, 고무보트와 플라스틱 재질의 선박이 속속 등장하면서 테우는 점차 그 자리를 잃었습니다. 이제는 박물관에 몇 척이 전시되어 있거나, 전통 행사 때나 잠깐 볼 수 있는 ‘문화재’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라져가는 테우를 단지 오래된 유물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단지 배가 아니라, 바다를 살아낸 사람들의 기억이자 공동체의 흔적이며, 자연과 인간이 맺은 관계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테우는 제주라는 섬의 고유한 리듬을 품고 있었고, 우리는 그 리듬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테우라는 배
테우는 제주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소형 목선으로, 이름부터가 제주어입니다. 일반적인 전통 목선과 달리, 테우는 선체가 낮고 납작하며 바닥이 평평합니다. 이는 얕은 해안가에서도 쉽게 운항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테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실용적입니다. 소나무나 삼나무 같은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로 제작하며, 못 대신 나무못과 닻줄을 이용해 각 판재를 엮습니다.
전통적으로 테우는 조업용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주로 김이나 미역을 채취하거나, 연안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을 때 이용되었고, 특히 해녀들의 물질(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활동)에도 쓰였습니다. 해녀들은 테우에 장비와 채취한 해산물을 실어 해안과 작업장 사이를 오갔습니다. 테우의 낮은 무게중심과 안정성은 파도가 잦은 제주 해안에서도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해녀들을 안전하게 실어 나르는 데 적합했습니다.
테우는 기계화된 배처럼 빠르거나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의 속도와 방식으로 제주 바다를 살아낸 배였습니다. 자연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고, 인간의 손과 힘으로만 다뤄졌기 때문에, 조타와 조업의 감각은 경험과 손기술에 의존했습니다. 이 단순한 구조와 방식이 오히려 테우를 제주 바다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했습니다.
마지막 테우를 만드는 사람들
현재 제주에는 테우를 만드는 장인이 극소수만 남아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70~80대의 고령이며, 후계자도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테우를 손수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장인은 이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제주 남쪽 해안의 한 마을에서는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마지막 테우를 손수 만들던 기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테우 한 척을 만드는 데는 한 달 이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나무를 골라 말리고, 톱질과 다듬질을 거쳐 판재를 만들고, 이어 붙이며 배의 골격을 세우는 일까지, 어느 하나 기계로 대신할 수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가마솥에서 푹 삶은 닻줄을 나무 사이에 박아 넣는 과정은 특히 섬세함이 요구됐으며, 배를 물에 띄우기 전에는 반드시 마을 공동체가 함께 힘을 모아 ‘진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제주 공동체 문화의 일부였습니다. 아이들은 배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고, 어른들은 배를 만들며 서로의 노하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문화가 단절되고 있습니다. 테우는 더 이상 일상에서 필요하지 않고, 배 만드는 기술도 전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몇 문화단체와 해양문화재단에서는 테우의 복원과 보존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통 배를 재현해 박물관에 전시하거나, 해양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에게 테우를 소개하는 시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제한적이며, 실질적인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엔 부족한 상황입니다. 테우를 단순히 ‘보여주는’ 전시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문화로 복원하려면 더 큰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라진 배, 남은 물결
테우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제주의 바다와 사람들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일부 마을 어르신들은 아직도 테우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테우에 짐을 싣고 떠나던 새벽녘, 해무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던 작은 배의 그림자, 아이들이 테우 옆에서 물장구를 치던 여름날 오후의 풍경—이 모든 것은 단지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제주의 삶이 담긴 기록입니다.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배는 작았지만, 우리 삶은 거기 다 실려 있었어.” 테우는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 바다와의 관계를 맺어주는 매개체였습니다. 테우가 없어진 지금, 제주는 더 넓고 더 빠른 세상과 연결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테우의 복원은 단지 물리적인 배를 다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을 복원하고, 삶의 방식을 다시 되돌아보는 과정입니다. 테우를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새기고, 앞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자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주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넓지만, 그 안을 부유하는 기억들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테우가 남긴 물결은 이제 기록과 증언, 사진과 이야기로만 간신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물결을 붙잡고 이어가는 일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합니다.
바다 위의 작은 유산
테우는 작고 느린 배였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와 크기에는 삶의 리듬과 자연에 대한 존중, 공동체의 유대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효율성과 기술의 이름 아래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제주 테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잊어도 되는 것’과 ‘잊으면 안 되는 것’의 경계를 되묻게 합니다.
테우가 마지막 항해를 떠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그 항해는 지금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기억이 이어지는 한, 테우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몫은 그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제주의 테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관계의 방식, 자연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공동체의 감각을 되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오늘, 우리가 테우를 다시 떠올린다면, 그것은 잊힌 배를 기리는 일이자, 우리가 어떤 삶을 지향할 것인지를 묻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