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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소목장, 마지막 가구를 짓다

by 조용한 성장 2025. 6. 5.

전통 가구는 단순한 물건이 아닙니다. 한 집안의 역사가 깃들고, 세월의 흐름을 견디며, 세대를 이어가는 물성의 기억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 가구는 ‘소목’이라 불리는 세밀한 목공예를 통해 제작되어 왔습니다. 이 소목은 짜임과 마감, 옻칠 하나하나에 장인의 손끝이 깃드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목장’이라는 이름의 장인들이 존재합니다.

 

전라북도 남원은 한때 소목장이 가장 많이 활동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질 좋은 소나무와 옻나무가 풍부했고, 조선시대에는 궁중과 사대부가에 납품되는 고급 가구들이 이 지역에서 제작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원의 골목에는 더 이상 톱질 소리나 망치 소리가 울리지 않습니다. 목재 냄새가 가득했던 공방들은 창고로 바뀌거나 아예 철거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마지막 소목장들은 이제 대부분 칠순을 넘긴 어르신들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마지막 남은 소목장’과 그의 가구를 기억하기 위해 씁니다. 단순히 오래된 가구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전통이 왜 사라지고 있는지, 또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전통은 그저 옛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의 뿌리이며, 미래를 위한 방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남원의 소목장, 마지막 가구를 짓다
남원의 소목장, 마지막 가구를 짓다

 

나무를 읽는 사람들

소목장에게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닙니다. 그들은 나무를 자르기 전에 먼저 나무를 ‘읽습니다’. 나이테의 방향, 옹이의 위치, 수분의 상태, 결의 흐름까지 모두 파악해야 제대로 된 재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남원의 소목장 이도현(가명) 장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무는 다 말을 해요. 억지로 깎으면 반드시 틀어집니다.”

 

과거 남원의 소목장들은 주로 한옥과 함께 쓰일 가구를 제작했습니다. 문갑, 반닫이, 농장, 책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가구들은 모두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춤으로 완성하는데,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 철학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분해와 조립이 가능한 구조로 만듦으로써 ‘순환’과 ‘연결’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철학은 가구의 미감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선이 아름다운 조형미. 남원 소목의 특징은 군더더기 없는 실용성과 은근한 장식미입니다. 이는 조선시대 성리학적 미학과도 연결되며, 실제로 유교 문화가 깊이 자리잡은 남원 지역의 생활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정교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식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비효율’로 취급됩니다. IKEA 식 조립가구와 대량생산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소목장은 너무 느리고, 너무 비쌉니다. 그래서 점점 젊은 장인은 남원에서 떠나고, 오래된 공방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도현 장인의 공방도 마을회관 뒤편 낡은 창고 건물에 불과합니다. 그는 매일 오전 6시에 나와서 혼자 나무를 만지고, 손으로 짜고, 칠합니다. 그러면서 “이 다음이 없어서 제일 허전하다”고 말합니다.

 

옻칠, 시간이 말하는 언어

소목장의 마지막 공정은 옻칠입니다. 옻칠은 단순한 마감재가 아니라, 가구에 생명을 입히는 일입니다. 옻나무에서 직접 채취한 생옻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쉬워 다루기가 어렵고, 칠한 뒤에도 최소 일주일은 건조시켜야 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요즘 시대의 감각과는 정반대의 공정입니다.

 

남원 소목장들은 이 옻칠을 세 번 이상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가구는 빛깔이 달라집니다. 처음엔 탁한 갈색이던 표면이 점점 깊은 밤색, 흑갈색으로 변합니다. 이 빛깔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름다워지고, 수십 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습니다. 이런 속성이 바로 소목이 ‘시간을 담는 기술’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도현 장인은 옻칠을 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여기서 붓질을 하지만, 이 칠은 내가 죽고도 백 년은 갑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가구 하나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것이 어떤 집에 가서 어떤 삶과 함께할지를 상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목장의 작업은 공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가구가 놓일 공간과 사람을 향한 ‘마음’까지 함께 포함합니다.

 

하지만 이 옻칠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공방을 찾는 젊은이들은 있지만, 대부분 일회성 체험에 그치고 맙니다. 제대로 기술을 익히려면 최소 5년 이상은 배워야 하는데, 생계가 어려워지면 결국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장인 지원 정책은 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습니다. 결국 옻칠은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취급되며, 더욱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남원의 소목장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정수였습니다. 가구를 중심으로 마을의 이야기가 모이고, 장인이 지역 어르신들과 소통하며 일상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연결망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이도현 장인의 공방에는 그가 만든 마지막 반닫이 하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반닫이는 손때 묻은 나무결과 옻칠의 윤기로 빛나지만, 이 가구를 제대로 알아보는 이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통은 결국 사람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알아보는 눈이 사라지면 전통도 함께 사라집니다.

 

지금 남원의 소목장 문화는 박물관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단계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전시용 가구’로, 누군가는 ‘체험 관광’으로만 소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전통의 계승일까요? 전통은 살아 있는 삶의 일부로 기능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집 안의 문갑 하나에 손때가 묻고, 그것을 아이가 열고 닫으며 자라날 때, 그 가구는 단지 물건이 아니라 ‘기억’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가요? 남원의 소목장들은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집에도 반닫이가 있었나요? 그 속에 무언가 소중한 것을 담아둔 기억이 있나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기억을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나요?

 

다시, 나무를 만지다

이 글은 소목장을 위한 애도가 아닙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기록입니다. 남원에는 아직도 손끝으로 나무를 읽고, 옻칠로 시간을 새기며, 가구에 마음을 담는 이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이 전통을 기억하고, 존중하고, 다시 삶 속으로 불러와야 합니다.

 

소목은 느립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사람의 온기와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현대사회에 부족한 가치입니다. 이 글이 그런 느린 손끝의 전통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집 한켠에도, 한 장인의 온기가 깃든 작은 반닫이 하나가 놓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