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사람들은 떠나려고 할까요.
고속버스터미널 플랫폼에 서 있으면, 그런 질문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작은 캐리어를 끌고, 누군가는 허겁지겁 탑승구로 달려가며, 또 다른 누군가는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손을 흔듭니다. 정시에 도착한 버스가 시동을 끄고, 다리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가며, 기사님이 내리는 순간까지도 이곳은 언제나 긴장과 이완 사이를 오갑니다.
이 공간은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은 떠나기 위해 여기에 오고, 플랫폼은 보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공항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기차역처럼 낭만적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솔직합니다.
이동, 분리, 재회, 불확실함—삶의 대부분은 사실 그렇게 구성돼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 머무르다 떠나는 이 플랫폼 위에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또 어떤 마음을 다시 챙겨 갑니다. 플랫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길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사실 하나로만 존재합니다. 그 안에서 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동성과 거리감, 그리고 다시 연결되려는 마음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됩니다.
이 글은 고속버스터미널 플랫폼이라는 ‘잠깐 머무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이별과 이동, 그리고 그 사이에 깃든 마음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입니다.
움직임 속에서 피어나는 고요함
버스가 플랫폼에 들어오는 순간, 공기는 잠시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고요함 속에는 묘한 정서가 스며 있습니다. 어딘가로 향한다는 기대, 헤어짐에서 비롯되는 아쉬움, 여행 전의 설렘,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틈에 놓인 짧은 정적까지.
고속버스터미널 플랫폼은 ‘정지와 이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발은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떠나지 못한 상태, 혹은 몸은 도착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 애매한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보통보다 느리고 조심스럽습니다. 짐을 다시 확인하고, 탑승권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며, 머뭇거리며 고개를 듭니다.
무언가를 떠난다는 건, 단순히 장소를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을 떼어놓는 일입니다. 플랫폼에 선 사람들의 표정에서 저는 그런 감정을 읽습니다. 이동을 앞두고도 그 움직임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공간의 고요함은 바로 그 사이의 시간에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건 사람들의 발소리입니다. 누구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대부분은 말없이 서 있습니다. 고요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장소. 버스가 출발할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플랫폼은 관계의 그림자를 비춘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사람들의 ‘작별 인사’입니다. 마중 나온 가족, 연인, 친구가 플랫폼 끝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눕니다. 짧은 포옹, 머뭇거리는 안녕, 창 너머로 주고받는 시선. 고속버스터미널은 일상 속에서 가장 소박하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작별의 공간입니다.
플랫폼은 관계의 그림자를 비춥니다. 가까웠던 사람은 거리를 두는 걸 어려워하고,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은 멀어지는 걸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헤어지는 순간이 낯설지 않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과의 시간을 충분히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별이 익숙해지는 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든 언젠가는 떠나고, 남게 됩니다. 플랫폼에서 손을 흔드는 행위는 단순한 작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함께한 시간에 대한 마지막 존중이자, 또다시 만나게 될 미래에 대한 작지만 단단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특히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도 한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저는 사람 사이의 ‘간격’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 간격은 때로는 이별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어디론가 떠나는 일, 결국 나를 마주하는 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자주 떠나려고 할까요. 단순히 여행을 위해서일까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무언가를 찾고 싶어서일까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떠나는 일에는 공통된 감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새롭게 하기 위한 갈망’입니다.
고속버스터미널의 플랫폼은 그런 ‘새로움’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기, 다른 도시, 다른 사람, 다른 나날을 마주하러 가는 마음이 이곳을 지나갑니다. 물론 대부분은 다시 돌아오겠지만, 떠나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다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습니다.
그런 기대는 중요합니다. 사람은 늘 같은 공간, 같은 리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점점 잊곤 합니다.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의 손에는 짐가방이 들려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 무거운 건 각자의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결단을 품고, 누군가는 치유를 바라며, 누군가는 변화를 시도합니다.
결국 어디론가 떠나는 일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밀쳐두었던 감정, 외면했던 관계, 회피했던 선택들. 플랫폼에 서면, 그 모든 것들이 하나씩 따라와서 내 옆에 앉습니다. 그러니 버스에 오르기 전의 그 짧은 시간은 어쩌면 가장 내밀한 ‘자기 인식’의 순간이 됩니다.
짧은 머무름이 남긴 여운
플랫폼은 결국 ‘지나가는 곳’입니다. 누구도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머무름 속에서 사람들은 아주 큰 감정을 경험합니다.
떠나는 사람, 떠나보내는 사람, 그리고 때로는 다시 돌아올 사람. 플랫폼은 이 모든 이들의 마음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이곳에는 시간이 느려지고 마음이 묵직해지는 특유의 감정이 흐릅니다. 잠깐의 고요, 마지막 인사, 손을 흔드는 습관, 조용한 발걸음까지.
어쩌면 인간은 본래부터 움직이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이든 몸이든, 우리는 정지해 있는 법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속버스터미널 플랫폼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합니다.
“떠나도 괜찮아요. 그건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그건 당신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예요.”
떠나는 일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을 품고 있습니다. 그 시작의 순간을 조용히 품어내는 이 플랫폼 위에서, 사람들은 매일 조금씩 ‘자기 자신’이 되어 갑니다. 다음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플랫폼 위에서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다시, 어딘가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