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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옥상, 발밑이 아닌 하늘을 보는 자리

by 조용한 성장 2025. 7. 11.

도시에서 가장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공간.
누구의 집 위에 있고, 누구의 회사 위에도 있지만, 정작 누구의 일상에도 포함되지 않는 공간.
바로 건물의 옥상입니다.

옥상은 흔히 ‘끝’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더 이상 위가 없는 지점. 하지만 그곳에 올라가 보면, 이상하게도 아래가 아니라 위를 더 많이 바라보게 됩니다. 건물 옥상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감각이 아니라 하늘 아래 있다는 감각을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 이 글은 그런 감각에서 시작됩니다.
어쩌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위'를 향한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도시의 소음과 고층 빌딩의 그림자 아래서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을까요?
이 글은 그 조용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건물 옥상, 발밑이 아닌 하늘을 보는 자리
건물 옥상, 발밑이 아닌 하늘을 보는 자리


혼자 올라간다는 일

옥상은 언제나 혼자 올라가야 하는 공간입니다.
엘리베이터로 10층까지 올라간 뒤, 계단을 몇 층 더 걸어야 하고, 철제 문을 밀고 나가야 하고, 때로는 열쇠나 비밀번호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 옥상입니다.

옥상은 쉽게 접근되지 않습니다. 그 점이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잠시 도망칠 수 있는 작은 천국. 벤치나 쉼터가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 음료를 살 수도 없습니다. 그저 평평한 바닥과, 철제 난간, 그리고 텅 빈 하늘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올라섰을 때, 사람은 오히려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무도 없는 그 위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며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감각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지하철역처럼 붐비지도 않고, 편의점처럼 불빛도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고독은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한 상태를 허락합니다. 옥상은 그런 고독의 장소입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장소.
그런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금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뭘까?”
“왜 나는 자꾸만 위를 보고 싶었던 걸까?”


도시의 무게를 내려다본다는 것

옥상에 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도시의 전체입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어느 순간 내 발 아래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벅차게 다가옵니다.
차들이 움직이는 모습, 신호에 따라 걷고 멈추는 사람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과 반짝이는 간판 불빛들.
도시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그 위에 서 있습니다.

이때의 감각은 묘하게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세상과 멀어진 느낌이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 전체를 포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두 감정이 겹칠 때, 이상하게도 '내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거대한 도시 전체에서 보면 얼마나 작은 일인지,
내가 누군가에게 미안해하던 일이 사실은 하늘 아래 무수한 일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걸,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조금은 알게 됩니다.

도시는 우리를 짓누릅니다.
속도를 요구하고, 성과를 재촉하고,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듭니다.
그 압박은 늘 아래에서부터 올라옵니다.
그러나 옥상에서는 그 모든 압박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이유도 없이 무거웠던 하루, 말없이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마음에 공간이 생깁니다.
"나는 지금, 이 위에 서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도시의 무게를 다시 짊어질 수 있는 기운이 생겨나는 순간입니다.


하늘을 보는 연습

옥상은, 무엇보다도 ‘하늘을 보는 장소’입니다.
길을 걷다가 하늘을 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간판이 가리고, 빌딩이 가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선에 밀려 고개를 드는 일조차 어색합니다.
하지만 옥상에서는 누구의 시선도 없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는 것 자체가 그곳의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옥상에서 하늘을 보면, 날씨를 ‘기분’으로 느끼게 됩니다.
바람이 세면 마음이 흔들리고, 햇살이 강하면 얼굴에 따스함이 스며들고, 비가 오면 오래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 변화들을 천천히 감각하면서, 우리는 삶의 리듬을 다시 맞춰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그 너른 공간을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내 마음에도 ‘공백’이 필요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채우려 합니다.
일정, 목표, 대화, 정보, 이미지.
그러나 옥상에서는 아무것도 채울 수 없습니다.
그 빈 곳에선, 오히려 무언가를 ‘덜어내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덜어냄은 정리가 아닙니다. 정리하려 하지 않아도, 그 공간 자체가 마음을 정돈하게 만듭니다.
무언가를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은 그저 하늘을 보는 날이라고, 옥상은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옥상이 필요하다

우리는 삶에서 너무 자주 아래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발밑에 놓인 책임과 일정, 결과와 평가.
그 사이에서 고개를 드는 일은 점점 낯설어지고, 하늘을 본다는 일은 사치가 되어갑니다.

그럴 때, 누군가는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열쇠를 돌리고, 철제 문을 밀고, 아무 말 없이 올라가 서 있습니다.
도시의 끝자락, 그러나 동시에 하늘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 앉아 자신을 바라봅니다.

옥상은 우리가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어떤 규칙에도 갇히지 않으며, 그냥 하늘을 보는 일만으로 충분한 곳.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옥상 같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의 끝, 혹은 한주의 끝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마음을 잠시 눕히고, 무겁게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아래로 내려올 수 있다면,
삶은 조금 더 견딜 만해질지도 모릅니다.

 

다음에 하늘이 너무 멀게 느껴질 때,
당신도 한번 옥상으로 올라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도시 위에서, 고요하게 나를 만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