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틈새 공간에서 발견하는 삶의 철학을 글로 적어가면서, 언젠가 꼭 다뤄보고 싶었던 장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코인노래방’입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 공간. 누군가는 짧은 흥을 위해 들르고, 누군가는 울음을 참기 위해 찾아옵니다.
이 글은, 그 작고 어두운 방 안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우리 안의 이야기를 담아보려는 시도입니다.
노래가 아닌, 목소리를 부른다는 일
코인노래방에서는 대체로 혼자 노래를 부릅니다. 짧은 시간, 몇 곡. 그저 마이크를 들고 자신만의 소리로 공간을 채우는 일이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기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생각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자주 듣지 못합니다. 회사에서는 낮춘 목소리로 말하고, 관계 속에서는 조심스레 말을 고릅니다. 그렇게 내 말투와 음색은 조금씩 타인의 기대에 맞춰 다듬어집니다. 하지만 코인노래방 안에서는, 오직 나만을 위한 음성만 존재합니다.
누가 듣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부를 수 있습니다. 음이 틀려도 괜찮고, 가사가 헷갈려도 상관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잘 부르는 노래’보다 ‘나의 노래’가 더 중요해집니다. 목소리는 미처 표현되지 못했던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날의 분노, 고단함, 서러움, 혹은 기분 좋은 들뜸 같은 것들이 가사에 실려 울려 퍼집니다.
문득 노래 도중 울음이 터질 수도 있고, 노래가 끝났는데도 계속 마이크를 쥐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고백. 코인노래방은 작지만, 아주 큰 울림을 품고 있는 고백의 방일지도 모릅니다.
코인이라는 시간, 혼자만의 리허설
코인노래방은 '짧은 시간'을 전제로 합니다. 1곡 500원, 3곡 1,000원. 제한된 분량 안에 자신을 몰아넣는 그 압축된 시간이 주는 독특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간에서 연습을 합니다. 단지 노래 연습이 아니라, 자기 감정의 리허설이기도 합니다.
헤어진 연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노래, 말하지 못한 위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후회 같은 것들이 그 안에서 조용히 리허설됩니다. 때로는 타인 앞에서 할 수 없었던 감정의 '예행연습'을, 혼자 부르는 노래로 치러내는 것이지요.
노래가 끝날 때마다 자동으로 점수가 뜹니다. 87점, 93점, 78점. 그 숫자들은 묘하게 우리의 감정을 수치화하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오늘은 좀 후졌나?”, “의외로 잘 나왔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점수를 보기 위해 부르는 게 아닙니다. 그 점수는 그냥 곁에 있을 뿐, 노래가 끝나고 잠깐 울리는 여운이 진짜 남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과를 평가하고, 말의 정당성을 따지지만, 이 방 안에서만큼은 그런 것들이 무력해집니다. 코인노래방은 오직 감정을 위한 리허설 무대입니다. 불완전한 목소리도, 불안한 마음도, 그곳에선 조금쯤 더 괜찮아집니다.
아무도 없는 객석, 그래서 가능한 고백
코인노래방에는 객석이 없습니다. 관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더 진실해질 수 있습니다. 들려주기 위한 노래가 아닌, 그저 흘러나오는 노래. 때로는 진심은 누군가를 마주하지 않을 때 더 잘 흘러나오곤 합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때로 낯설게 보입니다. 흥얼거리며 눈을 감았다가, 문득 눈을 뜨고 마주한 얼굴은 낯익지만, 낯섭니다. “내가 저렇게 힘들어 보였나?”, “지금 웃고 있는 건 진심일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하지요. 작은 방 안에서 나는 나를 바라보게 됩니다. 마치 무대에 오른 배우가 연기를 끝내고, 백스테이지에서 스스로를 마주하는 순간처럼.
간혹 옆방에서 다른 사람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아, 저 사람도 지금 뭔가 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그렇게 코인노래방은 각자의 고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은 도시가 됩니다. 보이지 않는 커튼 너머, 사람들은 각자의 외로움과 각자의 기쁨을, 각자의 멜로디로 부르고 있는 셈입니다.
나 혼자 있는 곳, 하지만 가장 나다운 자리
코인노래방은 도시 속 가장 작은 방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화장실보다도 작고, 엘리베이터보다도 답답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가장 자기다워집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내 안에서 울리고 있는 노래를 그냥 부릅니다. 그 행위 자체가 위로입니다.
밖에서는 눈치 보며 말해야 했던 문장들을, 여기서는 멜로디로 풀어냅니다. 목소리가 크고 작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말로 다 못한 감정이 노래 한 곡에 다 들어가 버리기도 합니다. “그때 미안했어”라는 말보다 어떤 발라드 한 곡이 더 정확하게 그 마음을 전달해주기도 하지요.
코인노래방에서 울거나 웃는 일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저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일 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삶의 어느 순간마다 이곳을 찾게 됩니다. 기쁜 날에도, 울고 싶은 날에도, 심심한 오후에도. 이 작고 어두운 방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무도 듣지 않는 방 안에서 노래했다.
노래를 부른다는 건, 결국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말보다 앞서 나가는 감정, 입안에서 맴도는 멜로디,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울림. 그것은 곧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가장 선명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시선과 타인의 반응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을 위한 소리를 낸다는 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박수치지 않아도, 그 공간에서 나 자신은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습니다.
코인노래방은 그렇게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요?”
그리고 이어서 조용히 말해줍니다.
“그 어떤 노래든 괜찮아요. 당신의 목소리는 들을 가치가 있어요.”
아무도 듣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내가 진심으로 듣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방 안에서 조용히 살아 있다는 노래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