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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진도의 옹기장, 마지막 불가마의 기억

by 조용한 성장 2025. 6. 5.

남도 끝자락, 전라남도 진도의 한 마을에는 수십 년간 불을 끄지 않고 지켜온 불가마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한국 옹기 문화의 보루이자, 손으로 흙을 빚고 불로 생명을 불어넣는 ‘옹기장’의 마지막 현장이었습니다. 옹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닙니다. 수천 년간 한국인의 삶을 지탱해온 저장 용기이며, 발효 문화의 핵심 도구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옹기는 ‘불편한 것’으로 전락했고, 옹기장이 사라지면서 그 기술도 함께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진도군 임회면에서 활동하던 마지막 옹기장 이춘섭 장인은 2021년, 건강 악화로 불가마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잇겠다는 제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진도 지역의 옹기 제작 전통은 사실상 맥이 끊기게 되었고, 한국 남부 지역에 전통 옹기장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글은 단지 장인의 은퇴를 아쉬워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잃어가는 것들’을 돌아보는 과정이자, 사라지는 전통 기술과 그 속에 담긴 공동체의 기억을 붙잡기 위한 시도입니다. 불가마는 식량을 보관하던 통이 아니라, 사람들의 노동과 철학,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품고 있는 ‘기억의 용기’였다는 점에서, 그 사라짐은 문화적 단절이기도 합니다.

사라진 진도의 옹기장, 마지막 불가마의 기억
사라진 진도의 옹기장, 마지막 불가마의 기억

흙을 빚던 손

이춘섭 옹기장은 14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레 돌리는 법, 흙을 고르는 감각, 불의 세기를 보는 눈—이 모든 것이 말로 전해지지 않고 손끝과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옹기 제작은 고된 노동이었지만, 이춘섭 장인에게는 ‘삶의 리듬’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쓰던 흙은 진도에서 나는 황토였습니다. 질감이 부드럽고 수축률이 낮아 옹기 제작에 적합했지만, 흙을 파내고 다듬는 일부터 시작해 물레로 성형하고 가마에서 굽는 데까지 2주 이상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었습니다. 한 점의 옹기를 만들기 위해 장인은 계절을 읽고, 날씨를 살피며, 바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과학 기술의 도움 없이, 온전히 사람의 감각으로 완성되는 예술이자 기능이었습니다.

 

옹기의 용도는 다양했습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그는 장독대부터, 젓갈을 저장하는 항아리, 심지어 물을 시원하게 보관하는 물독까지. 옹기는 그저 보관 용기가 아니라, 발효라는 생물학적 변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생명체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플라스틱이나 유리 용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숨쉬는 그릇’이기에, 그 가치는 오히려 현대에서 더 빛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옹기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었습니다. 대형 마트에서 유리병으로 담긴 고추장을 사 먹는 시대, 플라스틱 통이 주방을 점령한 시대, 전기냉장고가 발효를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옹기는 점점 ‘과거의 유물’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옹기장의 삶 또한 마모되어갔습니다.

 

불가마, 타오르던 공동체

진도의 불가마는 단지 도자기를 굽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이춘섭 장인의 가마가 있는 마을에는, 매년 음력 3월이면 ‘첫 불 넣기’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작업의 시작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한 해 풍요와 무탈함을 기원하는 공동체적 의례였습니다. 아이들은 가마 앞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술 한잔에 수고를 격려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가마가 타오르는 동안에는 누구도 잠들지 않았습니다. 장인은 불꽃의 색을 확인하며 온도를 조절했고, 마을 사람들은 간식과 나무를 날랐습니다. 그 시간은 단지 ‘옹기를 굽는 일’이 아니라, 함께 숨 쉬고 땀 흘리는 ‘살아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옹기장이 있었다는 것은, 마을에 불이 있다는 뜻이었고, 그 불은 공동체의 온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화의 바람은 불가마를 ‘비효율’로 만들었습니다. 전기가마가 도입되면서 불을 피우는 노동은 사라졌고,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품은 달라졌습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정부 지원의 축소와 함께 장인들은 점차 작업을 중단하거나 관광용 체험장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진도의 불가마는 상업화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순수 작업장’이었기에, 그 존재는 더욱 귀중했습니다.

 

이춘섭 옹기장의 불가마는 2021년 마지막 불을 지핀 후, 이제는 잡초가 무성한 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가마 위에 앉은 고양이 한 마리, 녹슨 연장들, 그리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흙덩이들 속에, 과거의 기억만이 남아 있습니다.

 

기술이 아닌 문화

옹기 제작은 단순한 기능 습득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역의 생태, 기후, 식문화와 맞물려 작동하는 총체적 생활 기술입니다. ‘옹기’라는 하나의 그릇을 통해 사람들은 계절을 예측했고, 발효 시간을 조절했으며, 가족의 건강을 지켰습니다. 따라서 옹기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지 기술자 한 명의 은퇴가 아니라, 한 지역의 생활 감각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진도의 옹기장이 마지막이 된 이유는 후계자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제도적 보호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일부 장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옹기장들은 생활고 속에서 작업을 이어갔고, 작업장 유지도 자비로 해야 했습니다. 전통 기술을 보전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면, 우리는 그 역할을 다했는지 되묻게 됩니다.

 

지금도 옹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발효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다시 옹기를 찾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아직 ‘소비자의 시선’일 뿐, ‘생산자의 손’을 다시 살리는 데는 부족합니다. 옹기장이 없으면 옹기는 없습니다. 살아 있는 기술은 반드시 사람과 함께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불 앞에 남겨진 우리

진도의 불가마가 꺼진 날, 지역 신문에 짧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옹기를 굽던 마지막 불이 꺼졌다.” 그러나 그 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옹기장은 단지 옹기를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자연과 시간을 함께 쓰며,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릇을 빚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물레를 돌릴 때마다, 그 속에는 가족을 위한 마음, 마을을 위한 책임, 자연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전통 기술은 복원이 어렵습니다. 전승자 없이 기록만 남은 문화는 결국 박제된 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도의 옹기장이 그랬듯, 우리가 지금도 지키지 않으면, 또 다른 ‘마지막’은 계속해서 찾아올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바라는 것은 단지 아쉬움의 표현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다시 흙을 만지고, 불을 지피고, 물레를 돌리는 삶에 도전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기억을 기록하고, 함께 이야기해주길 바랍니다. 전통은 그런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불은 꺼졌지만, 기억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 속에서 다음 불씨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