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서는 ‘돌문어 축제’가 열리곤 했습니다.
이 축제는 다른 지역의 화려한 불꽃놀이도, 대형 가수의 공연도 없지만, 오직 하나의 생물 ‘돌문어’에 집중된 아주 순수한 먹거리 중심의 지역 축제였습니다. 양구는 바다가 없는 내륙이지만, 이 돌문어는 해안면이라는 특수한 위치(과거 해안경계지역) 덕분에 생산되어 왔고, 그 맛은 동해안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돌문어 축제는, 그리고 돌문어를 잡는 사람들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사이에 지역의 작고 소중한 문화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중앙 언론의 조명도, SNS 트렌드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말이죠. ‘돌문어 축제’는 어쩌면 그런 사라지는 전통과 지역색의 상징적인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할 수 있는 이 지역의 축제와 음식, 그 문화의 끝자락을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문화를 아쉬워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왜 중요한지, 지금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다시 짚어보는 작은 시도입니다.
돌문어, 그놈 참 희한한 놈이지
돌문어는 흔히 먹는 참문어나 낙지와는 생김새도, 서식 환경도 다릅니다. 바위 틈이나 조류가 센 곳에 살기 때문에, 그물로 쉽게 잡히지도 않고 주로 ‘문어통발’이라는 전통 어구로 잡습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일대에서 잡히는 돌문어는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데, 이는 잡힌 후 바로 삶아낸 뒤, 급랭시키지 않고 ‘바로 데쳐먹는’ 방식에서 기인합니다.
양구 해안면의 돌문어는 대부분 ‘가정식’ 형태로 소비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민들은 잡은 문어를 시장에 넘기기보다, 마을 단위로 나눠 먹거나 동네 식당에 직접 공급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문화가 이어지면서 ‘돌문어 축제’가 생겨났고, 이는 어민들의 자부심이자 지역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장이기도 했습니다.
이 축제는 단순히 ‘돌문어를 먹는 자리’가 아니라, 한 해 어획의 운을 점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을 공동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상징적인 의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뒤를 따라 문어 삶는 냄비를 구경하고, 장터에서 구운 옥수수와 강냉이를 사먹으며 여름을 기억했습니다. 그런 작고 소박한 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전통적인 유통 구조와 소량 생산 시스템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형 유통망에 익숙한 소비자들, 손질이 복잡한 생물보다는 냉동 가공품을 선호하는 외지인들 사이에서 돌문어는 점점 외면받고 있습니다. 돌문어는 잡히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어 공급량도 많지 않고, 손질도 어렵기 때문에 유통이 까다롭습니다. 이 점이 시장 경쟁에서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축제의 종말은 언제부터였을까
돌문어 축제가 사라진 시점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2~3년 간 중단된 이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다시 열리긴 힘들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축제를 준비하던 지역청년회, 어촌계, 마을주민들의 고령화가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특히 지역 행사를 주도하던 중장년층의 이탈과 인구 유출은 축제의 생명력을 빠르게 약화시켰습니다.
실제로 2018년을 끝으로 축제가 중단되었고, 이후에도 한두 번 재개 논의가 있었으나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 축제의 성격 자체가 ‘로컬 중심’이었던 까닭에, 관광객 유치보다는 지역민들의 잔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복원 노력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조그만 마을회관 앞마당에 간이 무대를 설치하고, 지역 초등학생들의 합창과 어르신들의 고사리춤으로 하루가 지나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축제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돌문어는 여전히 잡히고 있지만, 그것을 매개로 삼는 지역의 자긍심과 공동체 의식은 서서히 옅어져가고 있습니다.
행정에서도 이에 큰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습니다. “돌문어 말고도 보여줄 것이 많다”는 입장 속에서, 전통 축제 하나가 아주 조용히 잊혀진 것입니다. 지금 양구 해안면을 찾으면, 돌문어 축제의 흔적은 일부 폐간판과 벽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간혹 마을 주민 중 누군가가 꺼낸 추억 속 이야기에서나, 돌문어 축제는 생생히 살아 있을 뿐입니다.
문어만 사라지는 게 아니야
사실 이 글의 핵심은 ‘문어 축제가 아깝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돌문어 축제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지역 공동체의 연결망이 함께 무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돌문어를 잡는 기술은 오랜 세월 어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며 전수돼왔습니다. 문어통발을 설치하는 법, 문어가 모이는 시기와 조류 파악법, 심지어 삶는 방법까지. 이는 단순한 수산 기술이 아니라 지역의 생활문화였고, 어르신들에겐 자존심이자 일상의 일부였습니다.
이 지식과 경험은 전수자 없이는 사라집니다. 관광객이 유입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반대로 지역 내부의 방식이 외부 시선에 맞춰 빠르게 변질될 위험도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지역에서는 전통 어로 방식 대신, 인위적인 사육 및 가공품 생산으로 전환되며 지역성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지식, 기술, 공동체의 리듬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돌문어 축제가 사라진 지금, 그 문화적 공백은 단지 '하나의 축제가 없어진 것' 이상의 무게를 지닙니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유대, 지역에 대한 애착,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돌문어 하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 곳곳에서는 비슷한 방식으로 전통 음식, 전통 공예, 지역 축제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처럼’ 보이게 말입니다.
사라지는 문화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우리는 종종 “그런 것도 있었지”라는 말로 많은 것을 떠나보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이들의 삶이었고, 공동체를 묶는 연결고리였다는 점에서, 이런 사라짐은 단순한 ‘변화’나 ‘진화’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양구의 돌문어 축제는 규모도 작았고, 특별한 볼거리도 없었지만, 그 안에는 사람 냄새와 손맛, 그리고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그런 문화의 자취를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것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기억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누군가에게 다시 새로운 관심이 되고, 이어짐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양구의 돌문어, 그 고요한 끝물의 풍경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기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추억에 잠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라지는 것들을 지금 어떻게 보존하고,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돌문어 축제 하나를 기록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한국 지역 문화의 미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함께 나누고 싶은 가장 큰 이야기입니다.